KBO리그를 평정한 뒤 2023년 시즌을 끝으로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의 시즌 전망은 장밋빛에 가깝다. 이정후는 수많은 구단들의 러브콜 속에 결국 샌프란시스코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에 계약하며 잭팟을 터뜨렸다. 포스팅 규정에 따라 샌프란시스코가 원 소속팀 키움에 줘야 할 포스팅 금액까지 합치면 샌프란시스코의 실 투자액은 1억3000만 달러가 넘는다.

당초 이정후는 현지 언론의 예상에서 연간 15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는 점, 이정후가 KBO리그에서도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또한 후한 예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현지 언론 대다수가 이정후를 2023-2024 메이저리그 자유계약선수(FA) 랭킹 TOP 10 수준, 여기에 외야수에서는 코디 벨린저에 이은 2위 수준에 랭크하면서도 4년 5000만 달러에서 6년 7000만 달러 수준으로 예상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 예상을 뛰어 넘고 또 상징적인 '1억 달러' 베팅을 한 건 다 이유가 있다. 경쟁 시장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현지 언론의 예상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베팅했고, 샌프란시스코도 이정후의 능력에 확신을 가진 끝에 결국 거액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샌프란시스코 또한 철저한 분석을 거친 만큼 1억1300만 달러 베팅은 웬만한 확신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줄 수 있는 선수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제대로 된 중견수가 없어 힘겨운 시즌을 보냈다. 중견수는 공격력은 물론 수비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정후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카우트들의 의견은 조금 갈려도 적어도 평균 이하라는 평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수비력 하나만으로 1억1300만 달러를 받는 선수는 없다. 결국 공격에서 더 큰 확신이 있었기에 이정후 베팅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전체적인 공격 생산력이 리그 최하위 수준이었고, 특히 좌타자와 중견수 포지션에 선 선수들이 그랬다. 메이저리그에서도 3할을 기대할 만한 공격력,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갖춘 이정후에 유독 꽂힐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이정후는 아직 미지의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이너리그 경력도 없다. 미국에서 어떤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확신처럼, 전체적인 컴퓨터 프로젝션의 예상도 후한 편이다. 계약 전부터 연간 2.5 이상의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최근에는 3 이상, 심지어 3.5 이상도 가능하다는 컴퓨터 프로젝션의 예상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정후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커진다.

아들러가 분석한 2024년 컴퓨터 프로젝션은 '뎁스차트'다. 보통 'ZiPS', '스티머'와 더불어 컴퓨터 통계 프로젝션의 트로이카를 이루는 한 축으로 뽑힌다. 각 프로젝션마다 계산법과 예상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프로젝션들은 과거의 기록을 기반으로 미래 기록을 뽑아내는 편이다. 메이저리그들의 경우 이전 시즌 성적들이 있다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이전 시즌의 기록들에서 유사점과 공통적인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이 그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갑자기 '퀀텀 점프'를 하는 선수들까지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보수적인 분석치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보편적으로 그리는 에이징 커브 곡선이 있다.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보통 2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절정의 기량을 그린다. 이 시점은 고교나 대학 졸업 후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몇 년이 지난 시점이다. 신체 능력은 절정에 가까운 시기고, 여기에 메이저리그의 경험이 쌓이니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해 전성기를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FA 자격을 앞둔다. 하지만 30대부터는 서서히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부상이 잦아지면서 그래프가 떨어지는 곡선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체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곡선을 그려보면 대략 그런 추세가 나온다. 프로젝션도 이를 반영한다. 30대 선수들의 장기 프로젝션에서 성적이 계속 올라가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완만한 곡선으로 떨어진다.

'뎁스차트'는 이정후의 성적으로 올해 134경기에 나가 581타석을 소화한다고 기본 가정을 깔았다. 여기서 타율 0.291, 출루율 0.354, 장타율 0.431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중 출루율(wOBA)은 0.338, 최근 타자의 공격력을 측정할 때 기본으로 보는 조정득점생산력(wRC+)은 116으로 봤다. 리그 평균보다 16% 더 좋은 득점 생산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수비에서도 평균을 살짝 웃도는 수준으로 봤고, 전체적인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는 3.2로 매겼다. 후한 평가에 가깝다.

세부적으로 보면 홈런 개수는 11개, 도루는 8개였다. 파워 히터나 리그를 대표할 만한 준족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대신 아들러의 설명대로 9.1%의 극단적으로 낮은 탈삼진율, 그리고 8.2%라는 볼넷 비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건 하나다. 뎁스차트 프로젝션은 기본적으로 2023년 이정후의 KBO리그 기록을 참고로 했으며, 그간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온 선수들의 성적 차이를 고려해 보정을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해외 무대에서 온 선수들은 마이너리그나 메이저리그 데이터가 없기에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