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당시 유럽 주요 대도시들의 풍경 모습들
파리
프랑스 제 3공화국 시절, 1890년대의 파리 시의 모습들.
좌익 성향의 시민들이 수립한 파리 코뮌이라는 공산주의자 패거리가
파리 역사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불태워버린 악몽같은 시간이 지난 뒤,
어느 정도 도시 기반시설의 재건에 성공한 파리의 모습은
지난 수 세기 유럽 기독교 사회와 문명의 중심지였던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듯 하다.
중세에서 근현대까지 가톨릭 신앙의 경건함, 바로크 예술의 화려함과
산업혁명의 총아같은 에펠탑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담아낸 아름다운 파리의 당시 모습
베를린
중세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그다지 특출난 도시라고 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느정도 근대적인 도시로서의 발전도상의 궤에 오르는 것은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이 수립된 이후였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초중반에 접어들어 베를린 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학교, 박물관, 극장과 같은 문화시설들이
베를린 시민사회의 지적, 문화적 열망과 수요에 따라 아름답게 지어진 대도시였고,
베를린에 입주한 각종 연구기관의 역량은 고고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 물리학, 경제학, 전자공학 등
모든 분야에서 유럽과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다.
빈 (비엔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의 1890년대의 모습들.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 열강의 수도로서 발전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마치 변화하는 시대를 거부하듯 건물의 외양만큼은 네오 고딕, 네오 르네상스란 이름으로
새로운 시청사, 극장, 교회들을 짓던 다소 고풍적이되 절충적인 취향이
고귀한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합의하에 용인되던 기묘한 도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9세기 말, 1890년대에서 1906년까지 즈음의 모습.
봉건적 구습에 의해 발전이 뒤쳐져 있던 러시아의 서유럽화를 부르짖던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의 가열찬 노력 끝에 늪지대에 지어진 항구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90년대에 이르면 화려한 위용을 세계 만방에 널리 떨치는 대도시가 되어 있었다.
러시아 차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 중 하나였으며
그러한 제국의 위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웅장한 궁전과 성당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1917년의 공산주의 혁명의 여파로 러시아의 수도가 모스크바로 천도하게 되면서
비록 그 문화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절대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다시 되찾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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